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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었던 노아몬

2021년 11월 이문범 교수 (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풍요로운 땅, 노아몬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노의 아몬과 바로와 애굽과 애굽 신들과 왕들 곧 바로와 및 그를 의지하는 자들을 벌할 것이라”(렘 46:25). 이 말씀에 등장하는 노의 아몬, 즉 애굽(이하 이집트)의 수도 노아몬은 룩소 혹은 테베(Thebes)라고 불린다(나 3:8). 

현재 이집트 카이로에서 나일강변을 따라 625㎞를 오르면, 노아몬에 도착한다. 현대 이집트의 수도는 카이로지만,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수도는 노아몬이었다.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을 따라 발달했다. 나일강의 남쪽을 ‘상 이집트’, 북쪽 삼각주 지역을 ‘하 이집트’라 부른다. 우기에는 밀림이 위치한 상류에서 이 많은 물이 내려오는데, 다섯 개의 폭포가 거세게 흐르는 물줄기의 유속을 느리게 한다. 노아몬은 이 마지막 폭포 후, 느리게 흐르는 강이 만든 풍요로운 땅이다. 

노아몬 상류의 폭포는 밀림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막고, 하류는 역류로 인해 배를 타고 침입하는 적을 막았다. 게다가 동서쪽 모두 광활한 사막이라 적으로부터 보호가 가능했다.


산 사람은 동쪽, 죽은 사람은 서쪽에

이집트가 섬기던 태양신 ‘라’ 혹은 ‘아몬’ 때문에 대부분의 신전과 주거지는 태양이 뜨는 동쪽에, 무덤은 해가 지는 나일강 서쪽에 자리한다. 고왕조(제3~6왕조, B.C. 2691~2176년) 때는 왕의 무덤을 나일강 서쪽에 피라미드로 만들었지만, 모세 시대인 신왕조(제18~20왕조, B.C. 1540~1070년)부터는 피라미드 대신 장제전이라는 장례식장과 무덤을 따로 만들었다. 장제전은 피라미드처럼 왕의 생전에 조성해 치적을 자세히 기록했는데, 모세를 건졌다고 알려진 핫셉수트여왕의 장례식장이 가장 거대하다.


카르낙신전의 기록

신왕조 때의 왕들은 전쟁을 치른 후, 자신의 치적을 카르낙신전에 기록했다. 신전에는 시삭 1세(B.C. 945~924년)의 기록도 자세히 남았다. 

시삭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국 분열 5년 후에 남유다의 르호보암왕을 쳤다(왕상 14:25; 대하 12:4). 성경에는 시삭이 남유다만 친 것으로 나와 있지만, 카르낙신전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북이스라엘의 도시들도 정복한 것으로 나온다.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던 노아몬

이집트는 신왕조 이후, 외세의 침략으로 왕조가 바뀌며 혼란기에 접어든다. 반면 북쪽의 앗수르와 바벨론은 강력해져서 수시로 이집트를 침략했다. 이집트로 오는 길의 마지막 방어선인 유다가 무너지고 북이집트가 점령된 후, 상류의 룩소도 위협에 처하곤 했다.

그러나 노아몬은 워낙 먼 곳에 위치해 남유다가 멸망했을 때도 일부 사람들이 피난을 왔고, 어떤 사람들은 더 남쪽인 엘레판틴섬까지 도망했다. 이 무리에 예레미야도 있었다. 예레미야도 노아몬의 카르낙신전을 봤을 것이다. 그러나 바사(페르시아)가 노아몬을 정복하면서 이집트의 역사는 끝났다. 노아몬이 지형적으로 아무리 풍요롭고 안전한 장소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보호하심 없이는 그 어느 곳도 안전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Vol.108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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