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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물렸어요!

2019년 07월 소문수 목사 (사랑의교회)

‘놋뱀’을 바라보라
광야 생활이 거의 끝나 갈 무렵이다. 단 열 하루면 갈 수 있는 결코 길지 않은 길을 무려 38년 동안 걷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회초리를 드셨다. 바로 ‘놋뱀 사건’이다.
놋뱀 사건은, 아론에서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로 제사장직이 계승되고 가나안 족속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에 발생했다. 새로운 세대가 이룬 첫 승리의 기록이다.
첫 전투의 승리가 얼마나 짜릿했을지 상상해 보라.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들의 높아진 마음은 여전히 에돔 땅을 우회해 돌아가야 하는 상황을 불편하게 여겼고,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을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가 교만의 불씨가 된 것이다. 이들은 모세를 찾아가 원망의 말을 쏟아 냈고, 그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범죄이기도 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 은혜를 잊고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놓은 그들을 심판하셨다. 뱀에게 물린 이들은 죽거나 죽음 앞에 놓이게 됐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달려가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장대에 높이 달아 세우고, 그것을 보는 자들은 살 것이라 말씀하셨다. 모세는 불뱀을 상징하는 붉은 놋뱀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자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모두 살았다.


‘놋뱀’ 사건의 의미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라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맞이하는 자신의 죽음을 설명하실 때 놋뱀 사건을 언급하셨다. 불뱀에 물려 죽음의 상태에 놓인 자들에게 유일한 구원의 길은 높이 들린 장대 위의 ‘놋뱀’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원한 죽음 상태에 놓인 우리에게 유일한 구원의 길은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뿐이다. 죽음의 원인이었던 뱀이 변해 생명의 길이 된 것처럼, 심판의 상징이었던 십자가 형틀이 구원의 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뱀이었을까? 양이나 비둘기 같은 동물이면 훨씬 덜 혐오스러웠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반드시 뱀이어야 한다.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해 죄를 범하는 현장에 뱀이 있었다. 또한 성경 여러 곳에서 뱀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을 상징하는 동물로 사용된다. 그러니 뱀은 곧 죄이고, 나무 위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죄를 짊어진 죄인을 대표하신다. 즉, 예수님의 죽음은 모든 더러움과 죄가 십자가 위에서 종결됐다는 의미이다.
놋뱀을 바라볼 때 이스라엘 백성이 생명을 얻은 것처럼, 자신의 죽음으로 세상을 구원하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영원히 죽었던 우리의 영혼에 생명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오직 그분께만 답이 있다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일수록 이런 복음이 익숙해서 시시하게 들릴 수 있다. ‘죄’라는 단어가 가지는 끔찍함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꿈틀거리는 뱀을 상상해 보라. 뱀에게 물렸다고 생각해 보라. 서서히 독이 온몸으로 퍼지며 고통이 밀려온다. 실감이 나는가? 죄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런데 죄란 얼마나 지독한지 훗날 이 놋뱀은 이스라엘 백성의 또 다른 우상이 됐다. 가나안에서 뱀은 보호와 풍요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히스기야왕 때에야 비로소 이 제단을 허물 수 있었다(왕하 18:4). 죄를 없애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길조차도 또 다른 우상으로 만들어 숭배하도록 하는 것이 죄의 끈질김이며 속성이다.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우상들, 매일 반복되는 죄들, 불순종과 방종으로 가득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하나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다. 매일의 삶 속에서 십자가를 바라보자. 죄악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사신 예수님, 그분만을 바라보자.

Vol.80 201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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