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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승리했는데 왜 기뻐하지 못하나요?(삿 21:1~7) 외

2022년 11월 이민형 목사(사랑의교회)

Q. 승리했는데 왜 기뻐하지 못하나요?(삿 21:1~7)


이런 끔찍한 일이…

사사기 19장에는 끔찍한 사건이 하나 기록돼 있어요. 어떤 레위 사람이 행음하여 친정으로 도망간 자신의 첩을 데리러 갔어요. 그런데 첩을 데려오는 길에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 지역의 불량배들에 의해 그 레위 사람의 첩이 죽임을 당했어요. 이 일로 분노한 레위 사람은 첩의 시체를 열두 토막을 내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보냈어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예요. 


미스바로 다 모여!

황당한 일을 경험한 이스라엘 각 지파 사람들은 곧장 미스바로 모였어요.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서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삿 20:1).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격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모인 사람들은 레위 사람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자세하게 물었고, 그는 자신이 경험한 사건에 대해 답해 줬어요. 그러자 이스라엘 각 지파의 사람들은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며, 심지어 이 일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을 선포했어요. 


폭력에는 또 다른 고통이 따릅니다

처음에는 이 문제를 대화로 풀며, 레위 사람의 첩을 죽인 불량배들만 처벌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베냐민 지파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전쟁이라는 안타까운 결론에 이르러요. 열한 지파가 뭉친 이스라엘 동맹군과 베냐민 지파가 싸우니, 당연히 베냐민 지파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고 끝내 전쟁에서 패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기뻐할 수가 없었어요. 같은 민족인 베냐민 지파가 완전히 없어지게 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죠(삿 21:6). 전쟁과 같은 폭력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더 큰 아픔과 상처만 남기게 된다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Q. 이스라엘에 왕이 있었다면 달랐을까요?(삿 21:25)


죄의 악순환

3개월 동안 사사기를 묵상하며 무엇을 느끼고 깨달았나요? 사사기에서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다음과 같이 반복되는 패턴을 확인할 수 있어요. ‘이스라엘이 죄를 지음 ▶ 어려움을 만남 ▶ 회개함 ▶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심 ▶ 다시 죄를 지음.’ 문제는 갈수록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심각해진다는 거예요. 사사기를 읽으면 ‘하나님께 이 정도로 혼났으면 정신 차릴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이처럼 죄의 악순환은 멈추기가 쉽지 않아요.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사기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구절이 하나 있어요.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삿 21:25) 실제로 이스라엘에는 공식적인 왕이 없었고 그래서 백성은 더 혼란스럽게 느껴졌을지 몰라요. 왜냐하면 왕은 한 나라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왕이 있고 없음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각기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어요.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죄를 짓고 잘못된 길로 갔어요. 결국 이 말씀은 죄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하나님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진정한 왕이십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에 백성이 잘못된 길로 가게 됐다.’ 이 명제가 틀렸다는 것은 이후 역사가 증명해요. 열왕기상·하에는 수많은 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가 기록돼 있어요. 그토록 원하던 왕이 세워졌지만. 나라의 흥망성쇠는 왕의 존재 여부에 있지 않았어요. 왕을 중심으로 온 백성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똑같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죠. 그러므로 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는 것보다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답니다.

Vol.120 2022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