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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발판이 된 고린도

2019년 09월 이문범 교수 (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로마와 아시아를 잇는 고린도운하
아레오바고언덕이 있는 아테네에서 70km 북서쪽으로 달리자, 이스트미아협곡을 가로지르는 고린도운하가 나왔다. 로마에서 아시아로 항해할 때, 바다로만 가려면 펠로폰네소스반도를 돌아가면 되지만 험한 해협들을 지나기 때문에 위험하다.
반면, 고린도로 가면 잔잔한 바다와 빠른 길이 보장된다. 다만 고린도에서는 5.8km를 육로로 이동해야 했는데, 이 방법이 더 안전하고 빨랐기에 고린도는 무역의 중심지가 됐다. 무역으로 번창한 고린도는 B.C. 27년에 아가야의 행정 수도가 됐다. 바울이 방문했을 당시 고린도의 인구는 20만 명이 넘어 아테네의 20배 정도로 추정된다.
고린도의 이런 이점이 바울의 선교를 수리아의 안디옥에서 아시아의 에베소, 아가야의 고린도에서 로마로 확장하게 했다.


음란한 문화가 넘쳤던 고린도
로마 제국의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한 항구 도시 고린도는 음란한 문화가 넘쳤다. 아테네 사람들이 음란한 사람을 ‘고린도 사람 같은 놈’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때 이 음란한 문화에 대해 경고하며, 우리 몸이 ‘성령의 전’임을 인식시키면서 거룩하게 유지하라고 호소했다.
고린도 문화를 볼 수 있는 박물관에는 눈뜨고 보기 민망한 그림과 조각이 많지만, 유대인의 회당이라고 쓴 글과 성전 촛대 모양인 메노라 문양 기둥은 바울이 방문한 회당을 연상하기에 충분하게 한다.


세계 선교의 다리가 된 고린도
박물관을 지나자 아고라가 나오고 그 앞에 베마라 불리는 높은 강단이 나온다. 베마는 로마 총독이 재판했던 곳이다. 바울은 유대인에게 끌려가 갈리오 총독에게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전화위복이 돼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정당성을 인정받게 됐다.
아고라의 서쪽 부근에는 사람들이 달리기할 때 출발지로 사용된 두 발을 놓는 홈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고전 9:26)라는 말씀은 이곳에서 일어난 달리기를 보면서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원형 극장이 있던 곳으로 내려가자 ‘에라스도’라는 선명한 글자가 보인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쓰면서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에게 문안하느니라”(롬 16:23)며 언급한 그 이름이 지금도 남아 전해지고 있다.


사랑으로 세운 고린도교회
고린도 유적에서 북서쪽 해안으로 6㎞를 가서 현대 고린도에 들어갔다. 현대 고린도의 바울기념교회 입구에는 이곳의 목회자 명단이 있는데, 가장 위에 바울이 적혀 있다. 교회 내부에 사복음서의 저자들이 네 기둥이 돼 교회 지붕을 받치고 있고, 그 위에 예수님이 그려져 있어 우리의 초점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이어야 함을 알게 한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네 번 이상 방문하며 인내와 견딤을 통해 세운 교회다. 복음 전파의 발판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달됐음을 감사드린다

Vol.82 201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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