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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목사의 교회사이야기

거룩한 반항아들

2018년 01월 김경덕 목사 (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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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왜읽지를못하니 #리스펙트_칼뱅 #멋짐폭발_제네바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었다. 중세가 끝날 무렵, 교황과 사제들의 부패와 부도덕이 넘쳐 났고, 교회는 타락했으며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교회는 새로워져야 했다. 1517년, 교회의 타락에 마침표를 찍는 사건이 발생한다.


구원을 팝니다
독일 최고의 연설가 요한 테첼이 교황의 휘장을 앞세우고 나타났다. “면죄부는 하나님의 고귀하고 소중한 선물입니다. 연옥에서 고통 중에 울부짖는 부모 형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찰랑하고 동전이 돈궤에 떨어지는 순간 연옥에서 고생하던 영혼은 천국으로 뛰어오릅니다.” 테첼의 연설에 감동받은 사람들은 면죄부를 사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연옥과 면죄부
가톨릭 교회는 연옥 교리를 가르쳤다. 연옥에서 죗값을 치르고 나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제들은 각 영혼이 연옥에 머물러야 하는 기간을 계산하고, 그 기간을 면제받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고 가르쳤다.
교황이 발행하는 이 신비한 종이는 면죄부라고 불렸다. 유럽 전역의 교회에서 면죄부를 판매했고, 거액의 판매금이 교회 금고에 쌓였다. 면죄부는 교회가 주도하는 사업과 전쟁을 위한 중요한 수입원이 됐다.
세속적인 교황 율리우스 2세와 레오 10세 역시 성 베드로 성당 건축에 드는 돈을 면죄부로 마련했다. 돈을 내고 면죄부를 사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교리는 중세 교회 타락의 절정을 보여 준다.


루터, 영웅의 탄생
마르틴 루터는 1483년, 독일 하르츠 산맥의 가난한 탄광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벼락에 맞아 갑자기 죽은 친구로 인해 자신의 갈 길을 정했다. 가톨릭 신자였던 루터는 성인들이 자신을 보호해 준다는 믿음에 따라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교리적으로 불순한 글을 썼다는 이유로 비텐베르크 성탑에 감금된 루터는, 어느 날 밤 깨달음을 얻는다. “솔라 피데(Sola Fide),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진리에 확신을 얻은 루터에게 로마 가톨릭은 오류투성이였다.

반박문을 쓰다
면죄부 판매를 바라보는 루터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루터는 대주교인 알베르트에게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는 편지를 보냈고,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을 제안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루터가 붙인 95개 조항의 반박문은 종교 개혁의 출발이 됐다.


교황의 반격
당시 지식인들은 라틴어를 사용했지만 민중의 언어는 독일어였다. 루터는 독일어로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는 글을 썼고, 많은 사람들이 루터의 생각에 동조했다. 교황은 심기가 불편했다. 교황은 루터에게 경고장을 보냈지만, 루터는 사람들 앞에서 경고장을 불살라 버렸다.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분노한 교황은 루터를 파문하고 보름스 의회에 출두할 것을 명령했다.


보름스 의회
“지붕 위의 기왓장만큼 많은 악마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해도, 나는 보름스로 가겠네!”
1521년 4월 16일, 루터가 보름스에 도착하자 도시는 흥분에 휩싸였다. 젊은 황제 카를 5세와 교황의 특사들을 포함해 교회와 국가의 최고 권력자들이 루터를 내려다보았고, 2만 명의 대중이 지켜보고 있었다.
천년을 이어 온 중세 교회의 지도자요 세계의 권력자인 교황 앞이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어떤 것도 철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루터의 생각은 분명했다. 성도가 직접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은 라틴어 성경만을 사용하도록 했다. 루터는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해 성도에게 성경을 되돌려 주었다. 성경은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교황에게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루터는 성도가 이 진리를 성경에서 직접 발견하기 원했다. 이는 루터가 주장한 개혁의 시작과 끝이었다.


칼뱅, 천재의 등장
루터가 독일에서 개혁의 꽃을 피울 무렵, 프랑스에서 또 한 명의 개혁자가 탄생한다. 1509년 7월 10일, 파리 동북쪽 성자들의 도시 누아용에서 태어난 이 천재의 이름은 장 칼뱅이다. 그는 꼼꼼하고 책임감이 강한 모범생이었고, 교수를 대신해 가르칠 정도로 학식이 뛰어났다. 신학과 법학을 공부한 칼뱅은 새로운 기독교 체계를 건설하기에 최적의 인물이었다.


제네바의 개혁자
칼뱅은 루터의 종교 개혁 사상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신변의 위협을 받았고, 파리에서 도망쳤다. 그 후 칼뱅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10년간 머무르는 동안, 종교 개혁의 원리와 민주주의 기초 위에 새로운 교회 조직을 세웠다. 그리고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워 종교 개혁 사상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 목회자들을 가르쳤다. 칼뱅의 활발한 활동으로, 제네바는 ‘사도들의 시대 이후 이 땅에 존재한 가장 완전한 그리스도의 학교’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칼뱅의 『기독교 강요』
칼뱅은 종교 개혁 사상을 바탕으로 『기독교 강요』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이 출간되자 가톨릭 지도자들은 책을 불태웠다. 그러나 인쇄된 책과 함께 종교 개혁 사상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칼뱅은 『기독교 강요』에서 기독교에 대한 체계적인 해설과 복음을 다뤘다. 칼뱅이 26세에 집필한 이 책은 16세기 교회와 유럽에 영향을 미친 독보적인 작품이다.


개혁은 계속된다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 개혁의 꽃은 칼뱅에 이르러 활짝 폈다. 루터가 잘못된 교회를 허물었다면, 칼뱅은 그 폐허 위에 바른 교회를 건설한 인물이었다. 16세기 종교 개혁과 함께 중세는 마감됐고 유럽은 근대 사회로 접어들었다. 종교 개혁 정신은 이후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추진력이 됐다. 교회가 변하자 세계가 변한 것이다.Q


참고 자료 : 알리스터 맥그라스, 『기독교의 역사』
필립 샤프, 『교회사 전집 7 - 독일 종교 개혁』,
『교회사 전집 8 - 스위스 종교 개혁』

Vol.62 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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